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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뿐 아니라 친절까지 갖추기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왜 그걸 못 보는지 알지 못하고, 모르는 사람은 아는 사람이 어떻게 그걸 보는지 알지 못한다. 결국 성장이란, 마냥 성실히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그로써 조금씩 아는 걸로 고치는 과정을 집요하게 하는 행위. # 피드백이 이루어지려면, 모르는 사람은 어떤 비판을 받더라도 자기 의견을 있는 그대로 노출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모르는 게 무언지 드러난다. 아는 사람은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모르는 사람이 뭘 모르는지 차분히 찾는 친절함이 필요하다. # 문제는 모르는 사람은 절박하지만, 아는 사람은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친절해야 할 절박함이 없다는 점. 그래서 많은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 중에서도 공..
2021.03.05 -
양극화라는 파도를 보는 관점
모든 영역에서 극심해지는 양극화. 양극화 속에서 사회사업/사회복지를 한다는 건 마치 집채만 한 파도 앞에 서 있는 느낌. # 이 와중에 누군가는 더 벌었다며 마치 자기 능력과 노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인양 착각하며 자랑하니 차마 보기 어렵고 누군가는 못 벌었다며 마치 자기 능력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처분인양 착각하며 자괴하는 것도 차마 보기 어렵다. 둘 다 양극화라는 거대한 조건에서 나타난 현상. 단, 초기의 작은 선택에 따라 누군가는 양극화라는 파도에 올라앉은 거고, 누군가는 그 파도에 휩쓸려 가라앉은 건데.. 그럼에도 마치 개인의 선택, 능력, 노력의 응보인양 과잉 해석하고 반응하는 건, 커다란 운에 작은 노력을 덧붙여놓고 모든 것이 노력 덕이자 탓이라고 자기확신편향을 갖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조건을..
2020.12.18 -
새로움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지극한 상식
새롭게 되고 싶다면서도, 정작 실행할 때는 기존 체계를 충실히 따른다. 한 치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위험이 우려된다는 이유다. 맞다. 체계는 늘 새로움을 억압한다. 따라서 새로움에는 위험이 따른다. 위험 없는 새로움이란 없다. 이는 상식이다. 결국 말로는 새로움을 외치되 행위로는 기존 체계를 충실히 따른다면, 이는 상식조차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화려해 보이는 '새로움'은 장식으로 달았으나 요구받는 대가는 지불하고 싶지 않아 당황해하는 무모한 사람이거나
2020.09.16 -
편향된 연결이 낳은 당당한 극단성
요즘 상식을 벗어난 사람 또는 집단을 보며 왜 저렇게 극단적으로 변했냐고들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 원래 비상식적이었는데 그간은 여러 조건으로 인해 이를 억제하며 지냈다가, 이제는 조건이 달라져 성향을 당당하게 드러낸다고 본다. 즉 변한 게 아니라 드러낸 것에 가까워 보인다. # 그럼 어떤 조건이 변했는가. 느슨한 연결의 시대가 되면서 연결은 넓어진 반면, 관계는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듣기 좋으면 가까이하고, 듣기 싫으면 멀리한다. 유유상종으로 모여 스스로 편향된 세상을 만들어 갇혀 지낸다. 그런데 비상식도 전국으로 연결되면 규모가 꽤 커진다. 사람은 자신이 동일시하는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본인이 옳다고 착각하기 쉽다. 더 나아가 다수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많다고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고..
2020.08.30 -
위기가 갑자기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코로나가 분명 충격을 주는 면이 있다. 하지만 위기가 갑자기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지역)사회 중심으로, 당사자와 관계인을 주체로,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으로 풀어가는 방법이 사회사업의 정체성에 맞는 실천임을 오랜 기간 나눴다. # 코로나 충격이 발생하니, 이제 여기저기에서 현장이 위와 같이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맞다. 동의한다. 그런데 이면에 다른 의미가 있다. # 만약 코로나 이전부터 사회사업 정체성에 맞게 실천했다면 어땠을까? 첫째, 이것이 대책으로 나올리가 없다. 무엇이 대책으로 제시된다는 뜻은 지금 현장을 그렇게 안 (못)했다는 반증이다. 둘째, 코로나 충격은 있어도 위기는 아니어야 한다. 왜? 코로나 대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코로나 이전부터 사회사업 정체성에 맞는 실천 방법으로 이미 ..
2020.08.21 -
같은 이유와 다른 믿음
누군가는 나를 옥죄는 구조가 바뀌어야 내가 바뀔 수 있다고 믿고, 누군가는 나를 옥죄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내가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 전자는 구조도 바뀌지 않을 뿐 아니라 어느 덧 한탄, 한숨, 탓만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무엇보다 본인에게 가장 무익하다. 후자라하여 무조건 구조가 바뀐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 즉 본인 자신은 바뀐다. 그러면 무엇보다 본인에게 가장 유익하다.
2020.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