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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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추구한다면서 공짜 심보로?
더 나은 모습을 추구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위험을 전혀 감내하지 않으려 한다면 진짜로 변화를 바라는 건지 의심스럽다. 아니 변화는 바랄 순 있겠지만 이룰 순 없어 보인다. 조직의 변화를 바라면서 정작 기존 구조와 내용을 먼저 줄이지 않고 오히려 자꾸 새로운 것을 더하려고만 하면 변화를 어찌 이룰 수 있을까? 지금 양손에 꽉 움켜잡은 것을 놓아야 비로소 눈앞에 새것을 잡을 수 있다. 새로움이란 기존 것을 깎아내는 아픔이 있어야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래서 흔들릴 위험을 감내해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위험은 하나도 감내하지 않으면서 변화를 바란다고 하는 건 내가 볼 때 공짜를 바라는 것만큼 허무해 보인다.
2023.11.23 -
지혜, 통찰, 암묵지 등이 더 중요해지는..
Data - Information - Knowledge - Wisdom # 20~30년 전, 100여 개 복지기관에 팩스를 보낼 땐, 종일 팩스 기기를 붙잡고 있었다. 이러니 팩스로 보낼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더 빠르게(?) 생활의 달인처럼 팩스를 보내느냐도 그 당시엔 중요한 역량(?)으로 대접받았다. 물론 이 기술은 당시 웹팩스(^^;)와 이메일을 공식 수단으로 받아들이면서 끝났다. # 이제 데이터를 묶어 정보로 만들고, 정보를 묶어 지식으로 만드는 건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훨씬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고 또 앞으로 더 그럴 거다. 그러면 이제는 정보 지식이 얼마나 더 많냐가 아니라 널린 지식을 어떻게 묶어내고 엮어 새로운 지혜로, 통찰로, 암묵지로 만드느냐가 핵심이 될 듯. 그간 수동적으로 매뉴얼에 ..
2023.03.20 -
내가 혼자 일하는 이유
[내가 혼자 일하는 이유] 조직은 잘 운영되면 분명 큰 임팩트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큰 임팩트를 발휘하려면 먼저 조직이 조직다워야 한다. 조직이 조직답지 않다면, 큰 임팩트를 만들기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조직을 조직답게 운영하는데 생각보다 큰 에너지를 써야 한다. # 혼자 일하면 분명 임팩트는 조직에 비해 작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건드릴 수 있는 사안도 내가 감당할 범위 내 작은 사안이다. 하지만 조직을 조직답게 만드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 큰 임팩트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핵심에 대부분 에너지를 집중하며 작은 임팩트로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작다고 덜 중요하다는 건 아니다. 작은 게 중요하고 크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혼자 일하는 이유.
2021.12.01 -
배우는 자세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왜 그것조차 모르는지 모른다. 모르는 사람은 본인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 따라서 배우려는 사람은 뭘 배우겠다고 달려들기보다 먼저 자신이 뭘 모르는지부터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좋다. 아는 사람은 아무리 초보적인 거라도 모르는 사람이 모를 수 있다고 여기고 뭘 가르쳐주기보다 무엇을 모르는지부터 알려주는 게 좋다. 그래야 모르는 사람이 그 모르는 것부터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모르는 게 뭔지 모르면 아무리 공부해도 그 모르는 걸 공부할 수는 없어서 계속 모르는 상태일지 모른다.
2021.10.28 -
상처가 쓰라리면
상처가 있으면 빨리 묻어버리고 깨끗한 미래로 가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구상하는 건 이성적 판단이 중요한데,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는 감정이 계속 일어나 이성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특히 쓰라린 감정은 회의감, 냉담을 만들어 이성을 움직이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다. 그러면 아픈 상처를 애써 참으며, 그래도 해보자고 제안하는 동료에게 마음에도 없는 상처를 주게 된다. 이처럼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람들이 모이면 마음과 다르게 쉽게 상처를 주고 또 받는데, 이는 여전히 상처가 쓰라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쓰라린 상처를 노출한 채로는 앞으로 나가기 힘들 뿐 아니라 애써 앞으로 나아가도 사실 멀리 못간다. 먼저 서로에게 어떤 쓰라린 상처가 있는지 알고 있더라도 서로 찾아봐주고, 괜..
2021.10.14 -
젊은 사람을 왜 내가 이해해야 하느냐는 항변에 대한 짧은 생각
간혹 젊은 사람들의 행태를 왜 내가 이해해야 하냐며 항변하고 억울해 하는 경우를 본다. 젊은 사람 소위 새로운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기성세대와 다른 뇌구조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살아가는 시대 상황에 적응 반응하며 가치관을 형성한다. 따라서 젊은 사람의 행태는 오히려 새로운 시대에 적응 반응한 결과에 가깝다. 결국 젊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건, 새로운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증일 수 있다.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이러니한 건, 젊은 사람 소위 새로운 세대는 이해할 수 없다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대는 자신이 잘 이해하거나 대응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21.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