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오류와 당사자 우선 원칙
2013. 4. 18. 06:25ㆍ푸른복지/복지와 인문사회
정보의 양이 인간의 정보처리 용량보다 많고 복잡합니다.
우리는 이전에 형성된 관점을 기준으로 현실의 정보를 취사, 선택, 구별, 판단합니다.결국 현실은 존재하지만, 각자 의식 속 현실의 모습은 필터를 통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필터로 재구성한 현실을 다른 이에게 설명하며, 이것이 현실이라 주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맹점이 있는 관점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현실 인식과 설명이 실제 현실과 온전히 부합한다 주장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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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대한 인식은 필터를 통해 걸러지므로
자신이 생각하는 현실의 모습은 사실은 자신의 필터를 걸러 인식한 모습인 셈입니다.
각자가 현실을 인식 속에서 재구성하는 셈입니다.
각자가 현실을 인식 속에서 재구성하는 셈입니다.
따라서 실제하는 현실은
내가 인식하는 현실과는 상이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필터로 재구성한 현실을 다른 이에게 설명하며, 이것이 현실이라 주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맹점이 있는 관점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현실 인식과 설명이 실제 현실과 온전히 부합한다 주장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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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점 실험
실제로 우리 눈에는 맹점이 존재합니다.
아래 그림에서 blind spot 이라고 표시된 파란색 선이 맹점입니다.
안구에는 시신경이 있는데, 시신경에는 상이 맺히지 않습니다.
결국 이곳에 맺히는 상은 맹점으로 작용합니다.
- 왼쪽 눈을 가린다.(오른쪽 눈만 사용한다.)
- 알파벳이 오른쪽 눈 시야 중앙에 오도록 두고, 알파벳에 초점을 맞춘다.
- 알파벳을 향하여 가까이 다가가면 어느 순간 검정 동그라미가 사라진다.
(검정 동그라미가 맹점에 들어섰기 때문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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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각적으로 맹점을 가지고 있지만
시각적이지 않은 부분에서도
맹점이 존재합니다.
즉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이는 다음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농구공을 몇 번 패스했는지 세는 실험입니다.
다음 동영상을 보고 흰색 옷 입은 사람이 총 몇 번 패스했는지 세어보십시오.
자칫 패스하는 장면을 놓칠 수 있으니 집중하고 세어보십시오.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패스 횟수를 확인하는 동안
혹시 고릴라를 보셨는지요?
이는 사실 집중력 테스트가 아닙니다.
고릴라를 보았는지 실험하는 동영상입니다.
실제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 중 절반 가까운 사람은
동영상에서 고릴라를 보지 못합니다.
몇 번 패스했는지에 정신을 집중하느라
고릴라를 보지 못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맹점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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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의 현실 인식이 우선이고,
사회사업가는 자신이 당사자의 상황을 돕겠다며 나섭니다.
하지만 사회사업가의 인식 필터와 당사자의 인식 필터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같은 현실도 인식 속 현실의 상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사업가와 당사자의 현실 인식이 다르다면,
누구의 인식을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까요?
하지만 사회사업가의 인식 필터와 당사자의 인식 필터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같은 현실도 인식 속 현실의 상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사업가와 당사자의 현실 인식이 다르다면,
누구의 인식을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까요?
사회사업가는 누구의 상을 기준으로 도와야 할까?
과연 사회사업가의 현실 인식이 당사자의 현실 인식보다 객관적이며 중요하다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사자의 현실 인식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하여 책임과 의무와 권리를 가지는 쪽은 당사자입니다.
마땅히 당사자의 현실 인식이 사회사업가의 인식보다 우선해야 합니다.
당사자의 현실 인식이 우선이고,
같은 현실을 본다 해도 사회사업가의 현실 인식 또한 실제와 다를 수 밖에 없음을 고려한다면..
사회사업가는 어찌해야 할까요?
당연히 여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같은 장소에서 같이 보았다 해도 당사자에게 여쭈어야 합니다.
이것이 당연한 결론입니다.
하지만 사회사업가는 자신이 인식한 현실이 당사자의 현실 인식 보다,
객관적 현실에 가깝다고 오판할 수 있습니다.
같은 것을 같은 장소에서 같이 보았다 해도 당사자에게 여쭈어야 합니다.
이것이 당연한 결론입니다.
하지만 사회사업가는 자신이 인식한 현실이 당사자의 현실 인식 보다,
객관적 현실에 가깝다고 오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판은 당사자에게 여쭙지 않거나 또는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백히 착각입니다.
사회사업가는 인식한 현실을 당사자에게 설명할 수 있으나,
당사자의 현실 인식이 마땅히 우선해야 합니다.
결국 사회사업가는 여쭙는 자여야 합니다.
사회사업가가 경계해야 할 것은 당사자보다 자신이 더 객관적일 것이라는 자만입니다.
사회사업가는 인식한 현실을 당사자에게 설명할 수 있으나,
당사자의 현실 인식이 마땅히 우선해야 합니다.
결국 사회사업가는 여쭙는 자여야 합니다.
사회사업가가 경계해야 할 것은 당사자보다 자신이 더 객관적일 것이라는 자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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