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8. 10:06ㆍ푸른복지/복지생각
얼마 전 공동모금회 관련한 글을 방대욱 선생님께서 올렸다.
많이 공감하고 동의한다.
개인 학습하다가 흘러 흘러 평가지표를 살폈다.
늘상 있었고 여전히 있는 [사업비 비율], [후원금 및 외부자원금 비율].
왜 복지기관 평가에서 이 항목은 관성적으로 그냥 두는 걸까?
사회사업은 돈으로만 하는 거고, 돈으로만 할 수 있고,
돈으로 해야 잘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돈이 아예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왜 굳이 지표에까지 넣어
'돈↗ = 사회사업↗'이라는 프레임을 유발하냐는 거다.)
당사자의 지역사회 관계망이 풍성해지면,
그 관계 속에서 비공식적으로 자원(돈 포함)까지도 돕고 나눌 텐데..
그런 관계망이 많아야 낙인도 의존도 줄텐데..
그때마다 복지기관 계정으로 넣었다 당사자에게 보내달라 하면,
도대체 누가 당사자를 도우려 할까?
지역주민 누가 복지기관 들러리 서려고 할까?
만약 그렇게 한다 해도,
그 결과, 당사자의 복지기관 의존성은 낮아지나 아니면 높아지나?
지역사회 공생성이 아무리 살아나도,
지역주민이 비공식적으로 직접 돕고 나누어도,
이렇게 되도록 사회사업가가 아무리 잘 도와도,
복지기관 계정을 거쳐 사업비, 후원금, 자원금이 되지 않는다면
인정하지도 않고, 잘했다 볼 수 없다는 식이다.
지향을 물으면, 당사자의 복지기관 의존성을 낮추어야 한다고 하면서,
지역사회의 돕고 나누는 공생성을 높여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복지기관 계정을 늘려 이 돈을 얼마나 많이 사용했지를 본다.
표현한 지향이 진짜일까 아니면 그냥 하는 말일까 싶다.
이런 프레임에 빠지니 스스로 을이 되어
공동모금회 같은 돈 주는 곳으로 앞다퉈 달려가는 걸까.
그곳이 도덕적, 윤리적 문제가 있던 없던 무심해지는 걸까.
모금회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도 거부하지 못하니
모금회 입장에선 바뀌어야 할 이유가 없는 거 아닐까.
결국 모금회가 갑 위치를 공고히 하는데 우리도 일조하는 거 아닐까.
(모금회든, 기업사회공헌이든 잘못할 때는
현장이 파트너십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도, 모금회도 때론 협력하고 때론 견제하는 관계여야
비로소 함께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당사자를 기관에 더욱 의존하게끔 하는데 일조하는,
지역사회 공생성을 약하게끔 하는데 일조하는,
복지기관이 을이 되어 돈 주는 곳에 굽신거리게끔 하는데 일조하는,
돈 주는 곳은 현장을 하대해도 되는 줄 알게끔 하는데 일조하는,
이런 지향과 결과가 다른 이상한 지표.
(물론 이게 다 평가지표 하나 때문이란 건 아니지만, 일조한다는 뜻이다.)
이런 평가지표가 없어도,
현장에 있으면 마음이 뜨거우니,
필요한 경우 후원금과 외부자원금을 스스로 열심히 찾을 거다.
하지만 이게 평가지표에 있으면,
필요하지도 않은데 마지못해 쓰게 되고, 그러면 마음이 식어간다.
이러면 필요해도 어떻게든 담당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주저한다.
나는 왜 아직도 이런 평가지표가 존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건 없애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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