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10. 08:00ㆍ푸른복지/복지와 인문사회
절망했습니다. : 절망
사회가 양극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좌절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 핵심어는 절망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함에도 불구하고
생계 자체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매우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갈망했습니다. : 정의
절망스러운 현실을 바라보며
그 뒤를 이어온 것이 바로 정의, 공정입니다.
절망스러운 현실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공정한 것인가에 대한
탐구가 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망 이후의 핵심어는 정의로 이어졌습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 소통
절망하는 사람, 정의를 갈구하는 사람
이들이 절실히 바라는 것은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이것에 대한 갈망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절망과 정의 이후 등장한 핵심어가 바로 소통입니다.
소리치는 이유는 인정받고 싶어서 : 공감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등장할수록
그로부터 내 감정을 인정받고
서로 동의하며 그로부터 힘을 얻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충남대 공감콘서트 사진
소통이 이루어질수록
내 이야기에 동의해 주기를...
만약 동의는 못하더라도 인정해 주며
그럴 수 있겠다며 고개 끄덕여 주기를 바랍니다.
나와 같이 있어줄 사람을 바라는 것입니다.
결국 절망과 정의, 소통 이후의 핵심어는 공감으로 이어졌습니다.
공감 이후의 키워드는 무엇일까요?
절망했고, 그렇게 정의를 갈망했고,
내가 생각한 정의를 서로 이야기하고 싶어했고,
그 과정에서 공감받고 인정 받고 존중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지금의 핵심어는 무엇일까요?
바로 희생입니다.
사람들이 아파하는 바를
진정 소통하고 공감한다면
결국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줄 사람을 찾습니다.
희생을 찾습니다.
더 가지려 노력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지시하고 감독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고 우리를 돕기 위해
자신의 것을 던져 희생하는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발견할 때
비로소 감동할 것입니다.
비로소 그를 따를 것입니다.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 리더십은
자신을 희생하여 사람들의 꿈을 사주는
정신, 리더십입니다.
본질을 모르는....
하지만 사람들의 이러한 바람과는 무관하게
어떤 분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핵심어의 근본 맥락을 모릅니다.
겉으로 드러난 핵심어만 갖고 자신의 행실을 맞추는데 급급합니다.
여전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라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정의라 생각하는 바를 듣는데 둔감하고
자신이 정의라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는데 민감합니다.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을 소통이라 여깁니다.
옳은 것을 알려주었는데 왜 공감하지 않느냐며 윽박지릅니다.
핵심어가 나온 기저에 있는 본질은 모른채
껍데기만 잡은 결과 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기존 정치권이 그러하며
이렇게 본질을 읽지 못하는 것은 협회든 단체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슬프고 슬픕니다.
그래서 다른 대안을 사람들이 목 놓아 찾는 것이고
고작 발견한 것이 정당도 아닌 개인입니다.
그렇게 발견한 개인에게 열광합니다.
50% 안철수씨가 5%의 박원순씨에게 양보하고 단일화 사진 @프레시안
@연합뉴스 박경철 "안철수 원장은 아무런 조건 없이 깨끗하게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했다."
이를 두고 아름답다 이야기하지만, 한편으로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사람들이 희생이라는 희망을
정당에서는, 조직에서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으니
조직도 없는 고작 개인에게 희망을 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반증입니다.
정치권 전체가 부정 당하며,
협회든 단체든 외면 받기 일보 직전입니다.
결국 그러면 그럴수록 세상을 읽는 능력이 부족하고
자질 부족한 리더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입니다.
본질을 모른다는 것을, 자격이 부족함을 자인하는 셈입니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희생의 리더십
희생의 리더십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뜻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는 자신을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이지, 희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기다립니다.
우리의 뜻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리더를,
그로써 우리의 뜻을 이루려 노력하는 리더를 말입니다.
희생의 리더십
지금 시대의 핵심어가 될 것입니다.
희생의 리더가 눈에 띄면 사람들은 그를 알아주고 따를 것입니다.
우리 앞에 나선 사람들이
'희생의 유익'이라는 지혜를 발견하기를 소망합니다.
이로써 훌륭한 리더가 되어주시기를 소망하고 소망하고 소망합니다.
* 참조 : 시골의사 박경철 '슬로건은 콤플렉스다'
'푸른복지 > 복지와 인문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재] 공생의 시대 - 복지국가의 어깨를 딛고 복지사회로 (0) | 2012.10.18 |
---|---|
비판은 넘치나 강점을 알아주는 이는 드물다. (0) | 2012.05.23 |
어떻게 하다보니 만들어지는 마을 (0) | 2012.03.28 |
2012년 2월 27일 페이스북 책사넷 서울 모임 후기 (0) | 2012.03.03 |
정보의 홍수 시대에 필요한 '버림' (0) | 2011.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