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6. 01:40ㆍ푸른복지/복지생각
얼마 전 한 사회복지기관을 방문하여 기관의 정체성과 평가 척도의 적절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용은 사회복지기관은 어디까지 책임지는 기관인가였습니다.
복지기관은 당사자의 자생을 전담하여 모두 책임지는 기관인가,
아니면 당사자의 자생에 기여하는 여러 요인 중 특히 관계를 돕는 기관인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복지기관이 약자의 자생을 전담하는 기관이라면,
약자의 자생이 얼마나 나아졌는가를 최종 평가해야겠지요.
하지만, 약자의 자생에 영향을 주는 요인 중 하나인
관계망을 담당하는 기관이라면
평가척도 또한 달라져야할 것 같습니다.
물론 관계망이 늘어나면 자생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단일 경로만 보았을 때 그러합니다.
자생에 영향을 주는 경로를 입체적으로 살펴보면,
관계망이 늘었다고 반드시 자생이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관계망이 늘어도 관계망 외의 다른 요소가 부정적 영향을 준다면 자생은 오히려 하락하게 될 수 있습니다.
자생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관계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요소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관계망이 늘어나면 반드시 자생도 달성되는가?
이렇게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사자의 자생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복지기관이 관계망에 집중하는 기관이냐,
자생까지 전담하는 기관이냐에 따라 평가척도는 당연히 달라져야 합니다.
이는 복지기관의 정체성과도 연결됩니다.
복지기관은 당사자의 '자생을 전담'하는가,
아니면 당사자의 자생 중 일부인 관계망을 담당하여 '자생에 기여'하는가?
복지기관이 과연 당사자의 자생을 전담할 수 있을까?
그러기 어렵다 봅니다.
자생을 전담하는 것은 모든 일을 하겠다는 것인데, 이런 직업은 있을 수 없다 봅니다.
결국 관계망을 살려 당사자의 자생에 일부 기여하는 것.
궁극적으로 자생을 도모하지만, 일부 기여함으로 도모하는 것.
이것이 사회사업의 현실적 역할일까 싶기도 합니다.
만약 사회사업가가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규정지었음에도,
개인의 자생성 만을 평가 척도로 삼아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일부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마치 전부를 요구하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자생과 공생 그리고 사회사업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하여 좀 더 궁리해 봐야 겠습니다.
다듬기 위하여
잊지 않기 위하여
거친 생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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