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유익하다고, 전체에게도 유익할까?

2010. 9. 9. 09:00푸른복지/복지와 경제

개별적 상황에서 정당하다고 하여 무조건 모든 면에서 정당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맥락인가에 따라 정당성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체 속 맥락을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system 관점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어떤 행위가 해당 맥락에서는 순기능이 있다 해도, 다른 맥락에서는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각자 해당 맥락에서만 순기능을 찾는 지엽적 관점에 익숙한 것 같습니다.

지엽적 관점에서 순기능적이면, 전체에서도 반드시 순기능으로 연결될까요?

시스템 전체에도 반드시 순기능으로 연결된다 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지자체의 부채 증가 권유가 그러합니다.

지금 여기에서는 경기가 부양되어 좋을지 모르나, 지자체 부채로 연결되기 때문에 결국 세금 증가라는 다른 부작용을 낳습니다.

 

경제수치를 목적으로 대기업 중심의 경제 운용이 그러합니다. 

대기업과 경제수치는 좋으나, 대기업에 현금이 몰려가면서 중소기업, 자영업의 생존 기반은 더욱 취약해 집니다.

경제수치는 좋아지나, 국가 경제의 성장 기반은 오히려 취약해집니다. 

 

미시적, 개별적으로는 목적을 달성한 것 같으나, 이로 인해 오히려 그 기반, 바탕은 더욱 허술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협의의 관점에 익숙하다 보니, 사회적 위기에 대한 대책 또한 협의의 수준에서 마련합니다.

 

물론 협의의 관점이 미시 문제에 대한 대응은 탁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시적 발전에는 도리어 해악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는 대응책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를 바라보는 관점의 넓이, 폭, 깊이의 문제입니다.

즉 진정한 문제는 관점의 협소함입니다.

 

 

최근 사회복지사의 시각이 너무 협소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좁은 관점으로 사람과 사회를 보고, 해결책을 도모한다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복지사와 이야기하면 답답하다는 반응이 있습니다.

 

사회사업을 돌아봅니다.

사람과 사회의 유기성, 전일성을 보지 못하고,

때로는 사람 중심으로만,

때로는 사회 중심으로만

협소하게 문제를 규정하고 이에 개입하는 면이 없지 않나 돌아봅니다.

 

지금 사회사업이 풀어야 하는 것은 

더 근본에 있는 관점의 협소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외부로부터 들려오는 이러한 문제제기가

행여 우리 안에서 변화를 찾아야 할 시기임을 알려주는 경고등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사회사업이 너무 협소한 관점에 따라 움직인다는 비판이 있고,

내부 안에서도 너무 관료화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시스템이든 유연성, 다양성의 부족은 에너지 유입을 방해하고, 결국 화석화됩니다.

이러한 화석화는 환경 변화에 부적응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결국 시스템은 붕괴, 분해됩니다. 

다만 저는 지금 시기를 사회사업이 기회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붕괴의 에너지란 다르게 보면 새로운 변화의 시작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위기 안에는 기회가 웅크리고 있는 법입니다.